영면에서 돌아와 스크린에 잠시 스쳐간, 보고 싶은 사람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不気味の谷)

불쾌한 골짜기 현상은 사람이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관련된 로봇공학 이론이다. 이것은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에 의해 소개되었다. 하지만 기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1906년 에른스트 옌치(Ernst Anton Jentsch)의 Das Unheimliche(무서운 것, 두려운 것)라는 개념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

불쾌한 골짜기는 몇몇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한국에서도 방영된 토마스와 친구들(1984) 시리즈와 3D 애니메이션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2004)가 있다.

최근에는 영화에서 등장한 가상 배우에게도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컴퓨터 그래픽은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사용하여 죽은 배우를 되살리는 것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론과 배경

로봇공학자 모리의 이론에 따르면,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는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되며, 그 이상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해지면 호감도가 다시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이때 인간과 흡사한 로봇과 인간과 거의 똑같은 로봇 사이에 존재하는 로봇의 모습에 느껴지는 거부감이 존재하는 영역을 불쾌한 골짜기라고 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로봇 간의 상호작용에 필요한 감정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는데, 인간과 닮지 않은 로봇의 경우 인간과 비슷한 특성들이 쉽게 드러나게 되고, 이런 인간적인 특성들로 인해 호감도가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과 매우 유사한 개체는 인간과 닮지 않은 특성들이 더 쉽게 드러나므로 실제 인간의 처지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고 기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결론적으로 불쾌한 골짜기 내에 존재하는 로봇들은 더는 인간과 흡사하게 행동하는 로봇으로 판단되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과 닮은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론에 대한 비판

그러나 몇몇 로봇공학자들은 인간과 비슷한 로봇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기에 모리의 그래프 중 가장 오른쪽 부분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닮은 로봇 머리를 개발한 데이비드 핸슨은 불쾌한 골짜기에 대해 “완전히 사이비 과학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

또한 카네기 멜론 대학의 연구원인 사라 키슬러는 불쾌한 골짜기의 과학적 위치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우리는 불쾌한 골짜기가 참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참이 아니라는 증거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 불쾌한 골짜기 효과는 집단에 이롭지 못한(특히 양육과 부양) 병자나 정신이상자를 본능적으로 식별하고 배제하려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영원한 꿈, 죽음

과학에서 말하는 죽음은 생명체의 모든 기능인 영구적인 정지를 뜻한다. 이로써 신체는 항상성을 완전히 잃게 되고, 생명을 잃게 된다. 의식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기절과 비슷하며, 영면(永眠)이라고 하는 등 잠에 비유하기도 한다. 죽음의 반대말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탄생이다.

이처럼 인간과 닮은 어떤 것에 느끼는 감정은 개개인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오늘 서술할 내용은 불쾌한 골짜기와 인간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최근 방송에서 인공지능과 XR 기술 등 최신기술을 사용해 고인이 된 사람을 추억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스크린을 통해 되돌아온 사람들, 

SBS AI VS 인간, 김광석 편

한국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이며 포크 가수로, 한국인들의 인생과 감성을 가장 감미롭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 가수이다. 가객, 노래하는 시인, 노래하는 철학자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예술가이자, 대중들에게는 가수 김광석이라는 이름과 함께 형, 오빠, 아저씨로 남아있는 가수이다.

첫 방송에 2021년 1월에 앞서 공개된 티저 영상에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난 김광석이 2002년 발표된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부르는 장면이 나와 기대감을 자극했다. 이는 모창 AI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구현되었고, 이 AI는 수십만 번의 학습을 통해 악보만 입력하면 어떤 가수의 목소리도 따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목소리를 복사하고, 편집해서 붙여넣는 단순한 음성 인식 기술이 아닌, 사람처럼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에 제작진은 “지금은 우리 곁에 없지만, 대중들이 그리워하는 목소리를 다시 들려줄 수 있길 바랐다”라고 밝혔다. 

엠넷의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 거북이

싱어송라이터인 리더 터틀맨이 수많은 히트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제작했다. 하지만 리더인 터틀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도 거북이의 노래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북이의 매력은 타 그룹이 가지지 못한 고유의 음악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에 관한 노래 이외에도 취업, 쇼핑, 자아 성찰, 여행, 추억 등등 여러 방면에서의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히트곡들은 사랑보다는 인간의 삶과 정신에 관심과 기초와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했다.

터틀맨이 2020년 지금도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재현한 30대 후반의 터틀맨의 외모와 특유의 표정, 제스처까지 복원했다. 목소리의 경우 터틀맨이 녹음했던 추임새가 아닌 부분이 있어 음성 합성을 한 곳이 있지만,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냈다. 생전 터틀맨과 비슷한 체형의 남성 댄서의 모습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촬영 후 얼굴을 합성해 만든 것이다.

MBC의 VR 다큐, 너를 만났다.

꼭 일찍 세상을 떠난 연예인만이 그리움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MBC는 VR 기술을 활용하여 일찍 세상을 떠난 딸과 어머니의 만남을 다루기도 했다. 2020년 2월 6일에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그것이다.

MBC스페셜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이나 실제 방송은 특집 VR 휴먼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다. 4년 전,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강나연 양과(향년 7세) 어머니 장지성 씨가 가상현실 세계에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런닝타임은 52분이지만 실제 촬영에는 6개월이 걸렸고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 1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2020년 12월에 ABU상 TV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외의 반응도 무척 좋았기 때문에, 2021년 MBC 창사 60주년 기념으로 시즌 2 방영이 확정되었다. 21일과 28일 방송에서는 부제목으로 ‘로망스’를 달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성지혜 씨를 남편 김정수 씨가 만나게 되는 편이 방영됐고, 2월 4일 방송에서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용균 씨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아우라와 한계

우리는 무의식적 혹은 무의지적으로 원본에 대한 존중과 경외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익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각종 매체의 소개와 이미지 파일로 접해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의 원본을 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행위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아우라가 등장하게 된다.

가장 완벽한 예술작품의 복제도 한 가지의 요소가 모자라게 되는데, 그때 그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일어난 장소에서의 일회적 현존이다. 이것을 원본의 독특성이라 하며, 아쉽게도 복제품에는 이것이 없다. 이처럼 예술품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진 아우라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유래된 아우라는, 진품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감동이 있고, 그것을 두고 아우라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우라는 어떤 매체를 수용하는 태도와 연관되며, 발터 벤야민의 미학을 수용 미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복원된 김광석의 노래에 아우라가 없다고 표현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관객이 김광석의 실제 무대에서 자아내는 신성한, 혹은 뭔가 말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실제 무대에서의 음악을 듣던 관객의 감정과 감동이 복제된 무대에서 느껴지는 김광석의 무대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그 순간이 아우라를 설명할 수도 있겠다.

살아생전 부르던 김광석의 노래, 그것이 앞서 설명한 일회적 현존, 원본의 독특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똑같은 모습의 김광석이 돌아온다 해도 그것은 복재이기에, 아우라를 가질 수 없다.

앞서 스타워즈 사례에 잠시 언급된 윤리적 문제도 또 하나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으며, 복제된 무엇이 다른 인간의 손을 거쳤기에, 인간의 편향성에 의한 왜곡의 가능성과 보안의 취약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의와 맺는말

그렇다면 복제된 것들은 그 자체로 아우라를 가질 수는 없을까?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그림에서 벤야민의 수용 미학을 되짚어볼 수 있는데, 이는 벤야민이 예술의 탈권위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워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복제 기술이 제작에 이용됐다는 것과 일상적인 소재가 작품 안에서 기호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복제된 것이지만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아우라는 그대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현대인이 대량 생산하고 소비하는 캠벨 수프 시리즈를 보면 깡통마다 디테일한 묘사가 조금씩 차이가 나며, 질감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복제된 복재들에도 각각의 아우라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감히 글로 담을 수도, 묘사할 수도 없을 만큼 슬픔을 겪었던 어머니에게 딸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그저 다큐멘터리의 관객일 뿐인 우리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으며 느낄 수도 없다. 그래서 VR로 체험되는 나연이의 모습이 우리에게 아우라로 다가오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지만 꿈에서 만날 수 없고
내 꿈에서 나연이는 웃지 않는다.
나의 죄책감때문인지 늘 원망의 눈빛.
웃으면서 나를 불러 주는 나연이를 만나
아주 잠시였지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늘 꾸고 싶었던 꿈을 꾼 거 같이.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세 아이들의 웃음이
우리 나연이의 빈 자리를 많이 채워주고 있다.
그래서 이제 슬프지만은 않다.

나연이를 그리워하고 아파하기보다는
더 많이 사랑하면서 내 옆의 세 아이들과 많이 웃으며 살고 싶다.
그래야 나연이를 만날 때 떳떳할 수 있을 거 같으니.

나연이 어머님, 장지성님 블로그에서 발췌

하지만 아우라라는 용어를 뛰어넘어, 어머니에게 위로와 치유의 힘을 선사한 나연이는 더는 복제된 것이 아닌, 그저 하나의 어린 딸일 것이다. 스크린에 가상으로 존재하는 데이터가 아닌, 잠시 세상에 현현한 그리움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앞서 소개한 프로그램들의 제작 의도라고 생각하며, 사람을 위로하는 마음, 그것을 전달하는 콘텐츠가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많이 제작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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